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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곡리윤재
작성일 : 2025.12.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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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자면서도 판단하는. 싶어 가까웠다. 비만이 사무실을[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1km도 떨어지지 않은 작은 양옥집, 이곳엔 50년 동안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살아온 어느 가족이 있다. 3대가 함께 지내는 대가족은 창문 너머로 늘 파란 지붕을 볼 수 있다. 평범한 이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얼마 전부터 이들에겐 근심이 하나 생겼다. 예전에는 없던 시위대의 소음 문제다. 소박하고 고즈넉한 삶을 영위해 온 가족은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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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스틸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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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경복궁 옆 조용한 동네에 한 가족이 터를 잡았다, 이들은 근 반세기를 이곳에서 보냈으니 은근히 드문 경우다. 단독주택에 3대가 함께 지내는, 이제 사라져가는 풍경이 이 집에선 현재진행 일상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바깥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도 바다이야기게임장 '집'에만 돌아오면 속세를 잊고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자발적 격리처럼 누리던 평화는 실은 거대한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파란 기와집'의 존재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 이 동네는 치안 확실하고 소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상적' 주택가였다. 정권 보위를 위해 사방에 초소가 들어서고, 동네 작은 시장조차 함부로 릴게임 야바위를 부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권력은 어디에나, 사방에서 지켜보던 탓이다. 어디 감히 좀도둑이나 사기꾼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으랴. 하지만 생업 영위하느라 바쁜 나날 보내던 가족은 체감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게 뒤바뀐다. 민주화가 진행되며 청와대로 가는 길은 한국 사회 격렬한 변화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시위는 끊이지 않고, 체리마스터모바일 이들의 함성과 발길은 자연스레 권력 중추로 향한다. 이제 가족에게 평안은 없다.
감독은 (본인 포함) 어그러진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한다. 속된 말로 '그림이 되는'. 그야말로 '얻어걸린' 소재 아닌가. 이런 극상의 재료를 써먹지 않는 건 창작자로서 되려 낙제점이다. 그렇게 가족의 골칫거리와 한국 사회변화의 거대한 파고가 융합되기 시작한다.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은 기본 설정만으로도 호기심 촉발하기 안성맞춤이다.
평범한 가족의 삶과 거대한 역사
▲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스틸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카메라는 대가족 구성원을 차례로 조명한다. 시작은 조부모다. 시위 소음에 온 가족이 잔뜩 예민해진 상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 지경이니 문제가 누적되지 않을 수 없다. 가족회의에서 몇 번이고 이사 안건이 올라오는데도, 할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와 할머니의 동조가 강력하게 벽을 치고 가로막는다. 조부모님에게 이 집은 대체 불가능한 보금자리다.
할머니가 가계부를 보여주신다. 1978년부터 매년 꼬박 기록해 온 이 기록은 평범한 지출 내역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의 일상사 연구 기록은 동사무소와 지방 법정 보관소에서 먼지 쌓인 시시콜콜한 공문서, 대를 이어 살던 고택에 숨은 일기를 집요하게 분석해 역사가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진실'을 일깨운다. 영화 속 가족들이 들려주는 것 역시 그런 맥락과 통하는 셈이다. 1979년 10월 26일에도 할머니는 가족 밥상을 위해 찬거리를 시장에서 구매했다. 격동의 시간에도 서민의 일상은 계속된다. 사소해 보여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대목이다.
한동안 비상 계엄이 이어진다. 2대째인 감독의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빠는 이동 통제와 시위대로 가로막힌 길 대신에 산자락을 돌파해 간신히 집에 돌아오곤 했다.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한 뒤 정통성 없는 권좌를 지키기 위해 동네 곳곳에 경비병력이 가득해지고 청와대 방향으론 창문도 낼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이 계속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동네는 안전하고 고요했다.
그렇지만 80년대 대학 생활 보내던 아빠와 엄마의 삶이 시대 격랑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듯, 민주화의 거역할 수 없는 물결은 그들의 일상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청와대 주변엔 얼씬도 못 하던 권력의 억압이 느슨해지자, 시청광장과 서울역에서 시위대가 북상하며 동네 인근으로 다가온다. 이제 소음은 일상이 되고, 하필 주말엔 더하다. 창문 열고 경치를 감상하며 차 한 잔 여유 같은 건 이제 영영 사라진 지 오래다. 일시적이라면 견디고 말겠지만, 아예 기약이 없다.
결정적 계기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다. 주말마다 거대한 군중이 모였고, 법원 결정으로 청와대 앞 100m까지 접근이 허가된다. 시위대는 환성, 가족에겐 재앙이 도래한 셈이다. 그래도 참고 견뎠다. 탄핵이 성사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다. 이번엔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이 바통 터치하듯 모였다. 문재인 정부 내내 거리는 떠들썩했다. 집회 때마다 교통은 통제되고 가족의 귀갓길은 미로를 헤매는 수난이 된다. 참다못한 감독은 이사하자고 가족을 설득하지만, 온갖 애절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난다.
우리의 소음, 그들의 소음
▲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스틸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탄핵이 결정되자 시국의 안정과 가족의 평안을 꿈꿨던 감독은 번민에 빠진다. 극우 시위대의 행태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가족이 누렸던, 본인도 어릴 적에 경험한 공권력의 제어가 그리울 지경이다. 하지만 스스로 환호하던 '정방향' 시위와 혐오스러운 '저들'의 시위는 똑같이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할 순 없는데, 동의할 수 없는 시위 소음은 참고 감수하던 연대의식을 갉아먹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내세우게 만든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가족에겐 남들과 조금 다른 화제가 생겼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정치적으론 썩 와닿지 않는데, 이 공약만큼은 5년간 시달린 가족에겐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 다를 바 없다. 참 곤란한 상황이다. 그렇게 남들에겐 말하지 못할 고민이 내내 이어진다. 마침내 선거 결과가 나왔다. 공약은 이행되고, 감독은 할머니 손을 잡고 개방된 청와대 구경에 나선다. 수십 년 넘게 지척에 살았지만, 실제로 '이웃집(?!)'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들은 신기하다며 곳곳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던 극우 시위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장소를 옮겼을 뿐이다. 퇴임한 대통령이 귀향한 양산으로 시위를 옮겼다고 한다. 가족은 이 상황이 이해되진 않지만, 아무튼 보이지 않으니 안도감에 금방 지워진다. 오랜만에 평화가 돌아왔다. 청와대는 문화예술 공연 무대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간혹 소음이 터지긴 해도 이만하면 견딜 만하다. 세상은 온통 아우성으로 가득한데, 가족의 삶은 역설적으로 태평성대다. 참 기구한 사연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평화가 무너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된 것. 하지만 서로 교대하듯 광장을 채우던 이들이 이번엔 동시에 출현한다. 소음의 결이 더 복잡해진다. 가족은 이 모든 걸 바라볼 따름이다. 그리고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고, 시국은 다시 5월 대선으로 전환된다. 이번엔 유력 후보가 청와대 복귀를 공약으로 내세운다. 이 가족만 공유할 수 있는 고민과 시름은 깊어만 간다. 운명의 투표일이 다가온다. 그리고 결과가 도래한다.
감독은 기록자인 동시에 화면 안에서 카메라에 노출되는 행위자로 멀티 플레이에 임한다. 그는 단순히 관찰자로서 가족을 피사체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회의를 확장한 형상처럼 끊임없이 개별 구성원에게 생각을 묻고 질문을 던진다. 자신도 카메라 앞에서 자주 생각을 밝히고 걸러지지 않은 속내를 표출하기도 한다. 가족이란 상대적으로 접근이 편리한 대상에 적극적으로 행위나 반응을 주문한다. 심각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대하는 접근법으로선 이색적인 풍경이다.
미시사와 거대사의 낯설지만 흥미로운 연결
▲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스틸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감독과 가족의 일상 브이로그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조응하는 형태를 취한다. 자신의 주변 배경을 '뽀샤시'하게 담는 콘셉트가 특별한 조건 덕에 역사 기록의 독창적 구성으로 순식간에 변환 가능해진 셈이다. 지금껏 해당 소재를 다루는 주된 방식과 확연하게 다른 시도다. 그 낯선 감각이 본 작품의 결정적 차별화가 될 테다. 굳이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봐도, 압축 근대를 경험하며 가족 안에서도 세대 차이가 격심한 한국 사회에서 3대가 어울려 사는 소우주의 자전 궤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관찰로 기능한다.
아마 1차 목표는 단순하게 가족이 처한 남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법한 고충을 남겨보자는 의도였을 게다. 그런데 기록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골격이 드러나고 '건수'가 된다는 판단이 벼락처럼 뇌리에 박혔을 법하다. 그 시점부터 평범하게 서술하던 가족사는 정치사 연대기와 교차하며 복합적 지층을 형성해 나간다. 가족들이 무심코 툭 던지는 듯 들리는 한 마디가 시대의 무게감과 결속되면 자연스레 해석의 재미가 배가된다. 성실한 기록 자체가 복잡한 설계를 초월해버린다.
관객이 경험하지 못한 낯선 접근법의 '마성'은 정제 과정을 거치며 조금 파격성이 줄어들지만, 그 대신에 지적 흥미가 추가된다. 무엇보다 열심히 시위에 참여하던 이들의 머릿속에 간혹 스치던 질문,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고 길을 메울 때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을까? 관한 답변 예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본 작품만의 가치를 부각한다. 인스타그램 '갬성'으로 치우칠 뻔 아슬아슬한 찰나도 종종 노출되지만, 용케 선을 넘지 않으면서 신선한 감각을 유지하는 방향감을 고수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오랫동안 험난한 과정을 걸쳐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시대에 새로이 닥친 시련, 나의 권리가 존중되려면 (볼테르의 금언처럼) 동의하지 않는 타인의 주장도 권리로 인정하고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게 보통 난제가 아니다.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은 집터를 조금 별나게 잡은 어느 가족의 연대기를 통해 분주하게 사느라 전체 숲을 조망하기 힘든 우리들의 시야를 확장해 준다.
거기에다 추가로 한국 사회가 당면한 극단적 대립의 일상화란 지반을 통찰하며 영화 속 가족의 고뇌를 자연스레 관객 모두의 화두로 승격시킨다. 혼자 심각하게 보기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고 나서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의미 있는 토론으로 변하는 체험을 제공해줄 작업이다.
<작품정보>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2025|한국|다큐멘터리2025.12.24. 개봉|72분|12세 관람가감독 안소연출연 안백순, 심복덕, 안성철, 박진령, 안소연배급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제공 프로나운스미, KBS

